분류중과거
퀘벡주의 역사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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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주에는 Saint Lawrence River (세인 로렌스 강)을 따라 자리하고 있는 수많은 호수와 강이 있는데, 이것이 전세계 담수자원의 16%를 퀘벡이 보유하게 된 이유라고 합니다. 퀘벡은 서쪽으로는 온타리오 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고, 동쪽으로는 New Brunswick주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미국의 Vermont & New York과 접해 있습니다. 퀘벡주를 대표하는 두 도시로 퀘벡시티(Quebec-City)와 몬트리올이 있는데, 몬트리올을 포함한 세인로렌스강의 옛 도시 가스펠 마을 등이 모두 프랑스의 문화와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2006년도 캐나다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006년 현재 캐나다 총 인구는 약 3200만명이고 퀘벡주는 총인구가 760만명으로, 12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온타리오주 다음으로 캐나다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퀘벡주의 인구 가운데 약 83%가 불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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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벡과 몬트리올은 언제, 누가 발견했을까? | |||||||
퀘벡주의 원주민은 아메리카 인디언과 에스키모족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현재는 각각 퀘벡 인구의 0.9%와 0.1%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1534년 6월 프랑스의 Jacques Cartier(쟈크 까르띠에)가 새로운 영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는 길에 우연히 퀘벡의 Gaspe(가스페)지방에 도착해서 그 영토를 점령하게 됩니다. 처음 이 곳을 점령한 Jacques Cartier는 퀘벡을 발견만 하고 프랑스로 돌아갔고, 1908년 Samuel de Champlain (사무엘 드 샹플렝)에 의해 퀘벡시가 발견되었고 퀘벡시는 French Canada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이보다 조금 앞선 1604년에 몇 개의 마을이 발견되었지만 이 마을들은 단순한 무역거래소의 역할만을 하는 장소로 이용되었고, 퀘벡시가 처음으로 영구적 정착민이 생겨난 도시였습니다. 퀘벡시가 정착지로 형성된 후 Saint Lawrence 강을 따라 1634년과 1642년에 두 개의 타운이 발견-정착촌이 형성되었는데 이곳이 Trois-Rivires와 Montreal(1642)입니다. 프랑스에 의해 처음 개척된 New France, 퀘벡은 프랑스와의 식민지 쟁탈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함으로써 1763년 프랑스가 퀘벡의 식민지 통치권을 영국에게 넘겨주면서부터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었고, 1867년이 되어서 비로소 캐나다의 하나의 주(a Province of Canada)가 되게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퀘벡주가 불어를 포함한 프랑스 문화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게 요소입니다. 어느 곳이든 새로운 점령자가 등장하면 기존의 정착민들이 갖고 있던 언어와 문화를 없애려고 하는가 봅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암울했던 시대가 있었던 것처럼, 새롭게 퀘벡을 지배하게 된 영국은 이미 그 지역에 정착해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불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온갖 불평등한 규정을 만들었고 그럴수록 불어와 프랑스문화를 지키려는 정착민들의 의지는 강해지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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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어 그리고 영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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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식민지 통치권을 가진 영국이 불어와 프랑스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동원할수록 퀘벡주민들의 반발과 저항이 강해졌습니다. 그러자 영국은 1840년 영어를 캐나다의 공식언어로 채택하였다. 하지만 퀘벡에서는 여전히 퀘벡의 고유한 문화를 보호하고 그러기 위해 불어의 사용을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과 운동이 계속되었습니다. 20세기에 들면서 퀘벡은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펴 나갔고, 여러도시들도 발전과 현대화가 급속히 진행되었습니다. 캐나다의 다른 주보다 앞서서 시작된 현대화 & 산업화로 인해 새로운 분야의 산업들이 생겨났고 교육과 사회복지 제도의 개혁도 다른 주에 비해 앞서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1974년 퀘벡주는 영국에 의해 영어가 공식언어로 공표된 후 130여년만에 불어를 퀘벡의 공식언어로 선포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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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벡의 독립 | |||||||
| 1867년 캐나다의 주가 된 이후에도 퀘벡은 캐나다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애를 써왔습니다. 다른 주들에 비해 문화, 산업, 교육, 경제 모든 분야가 앞서 발전하게 되자 1980년 퀘벡은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게됩니다. 독립을 자신했던 퀘벡은 그러나 찬성 49.4%, 반대 50.6%라는 너무나 근소한 차이로 독립의 좌절을 맛보게 됩니다. 이 후 1995년 Jacques Parizeau(쟈끄 빠리조)가 이끄는 퀘벡당이 다시 두번째로 퀘벡 독립을 위한 퀘벡 국민투표를 실시하였으나, 또 다시 과반수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독립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들을 한다는 이유 때문에 간혹 사람들은 퀘벡을 국수적이고 대단히 보수적인 곳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로 퀘벡은 다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포용하기 위해 무척 적극적인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

퀘벡주의 원주민은 아메리카 인디언과 에스키모족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현재는 각각 퀘벡 인구의 0.9%와 0.1%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